지난겨울에 흰 양말 10켤레를 샀다. 올해 여름에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를 샀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다시 보니 회색 양말 8켤레가 생겨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세탁기를 돌리는 1인 가구는 환경 운동을 가장한 게으름을 피운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래요; 아무도 믿지 않았던 말이 현실이 되었을 때, 백의민족은 사라져버릴까. 하루는 흰색 옷가지만 모아 빨래를 해보았다. 수건이 가장 많았고, 얇은 흰색 셔츠가 하나 있었다. 개중에는 젖은 눈 냄새가 날 것 같은 흰색도 섞여 있었지만, 이 색의 파괴자는(뉴턴에 의하면) 작은방에 고요를 불러왔다.
실리카겔, 판넬에 유화, 45.5cm x 37.9cm
이 녀석들은 갇힌 공간에서 평생을 살다가 포장이 뜯기면 가장 먼저 버려진다. 넓은 세상에서는 쓸모를 발휘하기도 어렵고 큰 의미도 없다. 하지만 김 봉지 안이라면, 작은 영양제 통이나 좁은 옷장 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리카겔 알갱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이 있어서 1g의 표면적이 테니스코트의 3배이다. 한 개에 10원(2022년 기준) 하는 조그마한 실리카겔에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동명의 한국 록밴드가 있다. 그들은 밴드 이름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껌 통에 든 실리카겔을 보았고 밴드명으로 발탁했다. 그들 또한 이 자그마한 쓸모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물 그림자, 디지털 사진, 3089 x 2048
그는 집안일 중에서도 설거지를 힘들어한다. 먹는 일도 귀찮은데 먹은 것을 치우는 일은 오죽하냐고 했던가. 만약 일요일 아침에 햇빛이 잘 든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그는 밀린 설거지를 하기 위해 바삭바삭한 고무장갑을 낀다. 스펀지로 흰 거품을 내고 큰 냄비부터 닦은 뒤 작은 수저부터 헹궈낸다. 흰 접시는 중간 과정인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날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볕이 드는 날이다. 왼손에 접시를 쥐자 오른쪽 창에서 들어온 빛이 물을 만나고, 통과하지 못한 부분에 그림자가 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요일인가. 그는 오른손에 낀 고무장갑을 벗고는 카메라를 들고 와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남은 식기를 마저 헹군 뒤 식기세척기를 사고 싶다고 생각한다.
자취방 냉장고, 디지털 사진, 1933 x 2815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내게 주어진 권리는 침대, 책상, 전자레인지가 있고 냉장고도 그중 하나이다. 에너지 소비효율등급 5등급을 자랑하는 삼성 냄장고는 여름에 기이한 행태를 보인다. 음식이 이상할 정도로 금세 상해 세기를 높이면 냉장실을 얼려버리곤 한다. 가난한 자취생을 위해 엄마가 반찬을 몇 번 해주셨는데, 음식이 상한 뒤로는 내 선에서 거절한다. 나는 요리에 관심이 없어서 냉장고가 거의 텅텅 비어있고 '냉장고 파먹기'같은 건 할 일이 없다. 한 번은 냉장고에 사과 한 알이 들어있었다. 딱 한 알. 이 작고 동글동글한 친구를 먹어버리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사과는 이상할 정도로 상하지를 않았다.
책상, 디지털 사진에 글, 2994 x 1915
낮 시간 동안 작은방에서 취할 수 있는 자세는 첫째 침대에 앉기, 둘째 침대를 등지고 바닥에 앉기, 마지막이 책상에 앉기이다. 침대에 ‘앉기’는 10분 이상 유지되기 어렵고 바닥에 앉으면 허리가 아프므로 나는 책상으로 향한다. 소파가 없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웠던 탓에 한동안 나의 위시리스트 1순위는 소파였다. 아무리 작은 소파여도 5평짜리 원룸에 들이기는 무리여서 뒷 순위로 밀려났지만... 의자가 편안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책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건을 어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취향이 듬뿍 담긴 물건은 아무렇게나 나열되어 있어도 규칙이 있어 보인다. 언젠가 원목으로 만든 책상 위에 이 물건들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불, 디지털 사진에 드로잉, 6000 x 4000
이불만큼 평화롭고 따뜻한 물건이 또 있을까. 이불 찬양론자는 밤 사이 뒤엉킨 이불의 무질서를 사랑한다. 꿈속 중얼거림과 어리광, 바디워시 향기와 침 냄새가 공존하는 순간을. 그는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잠 냄새'라고 정의 내린다. 잠 냄새는 무릇 이불에서뿐만 아니라 잠에 취해있는 사람에게서도 풍겨오는데 특히 어린아이의 것이 강력하다. 잠냄새는 코를 막아도 맡을 수 있고 사람들의 꿈속을 굴러다니면서 그 크기를 키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잠냄새 나는 이불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이불도 편히 잠들 수 있을 텐데.
컨버스 올스타 하이 화이트, 가변 설치
한때 아기네스 딘이라는 영국 모델을 롤 모델 삼아 머리를 짧게 자르고 컨버스 하이와 닥터마틴 신발을 신는 미래를 상상했다. 나는 한 켤레의 컨버스를 5년 동안 신었고, 닥터마틴은 가격이 올라 여전히 사지 못하고 있다. 스무 살 초여름 무렵 새하얗던 신발은 2022년이 되어 고무 밑창에 구멍이 났고 햇빛에 바래 누렇게 변색되었다. 여기저기 기름때가 끼어 까맣게 물들기도 했다. 누군가 이 신발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나의 20대가 담긴 신발이라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신발을 회 뜬 생선처럼 남김없이 해체한 까닭을 묻는다면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좋은 기억만 발라내고 찌꺼기는 먼 바다에 던질 때가 되었다.
코끼리 아저씨, 디지털 사진에 드로잉, 5786 x 3671
아기 코끼리가 사람에게 장난치는 영상을 본 뒤로 코끼리를 키우고 싶어졌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라더니 우리 집에 사는 코끼리는 코가 손잡이이다. 원룸에는 제대로 된 문이라곤 화장실 문뿐인데, 마침 문 손잡이가 기다랗고 두 개의 나사가 드러나 있어 코끼리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코끼리 아저씨와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허리를 숙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개도 오른쪽으로 90도 꺾고, 마음을 착하게 먹어야 한다. 한번 안면을 튼 이후로는 매일매일 볼 수 있으니 첫인상이 중요하다. 코끼리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이고, 싫어하는 것은 어두운 화상실에 홀로 있는 것이다. 문을 살짝 열어두면 안심한다.
토마토 베개, 캔버스에 유화 & 연필, 40.9cm x 31.8cm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물건이 간혹 있다. 토마토가 그려진 베갯잇 같은 것이 그렇다. 토마토는 과일이 아니라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토마토이다. 방울토마토를 앉은 자리에서 100개도(세어보진 않았다. ‘많음’의 상징으로 썼을 뿐) 먹을 수 있는 정도라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유치원 때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라는 동화책을 읽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착한 어린이가 되기 위해 토마토를 좋아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동화 속 편식 쟁이와는 달리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토마토를 설탕에 절이지 않아도 잘 먹는 어른이 되었다. 베갯잇까지 토마토로 장식해 토마토가 꿈에 나오길 바라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흰 비누, 디지털 사진, 5231 x 3406
비누는 높은 확률로 흰색이다. 흰색이라는 색이 지니는 깨끗함, 순수라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나는 모종의 이유로 흰 빨래에 이어 흰 비누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게서 더 이상 찾기 어려운 순수함을 좇기라도 한다는 듯이 거품을 잔뜩 내어 손을 씻는다. 반항적이게도 모든 빛을 반사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한 비누는 말갛게 작아진다. 충분히 작아지면 변기에 버려지거나 휴지에 감겨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옛사람들은 비누 향을 멋쟁이 냄새라고 부르며 마른 비누를 얼굴에 문지르곤 했다던데 온갖 쓰레기 사이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이쯤 되면 비누의 입장이 궁금해진다. 철저한 희생정신에 기반한 것인지, 흰색 중에서도 죄를 지은 녀석들이 비누로 환생하는 것인지.
초록, 디지털 사진에 드로잉, 1755 x 2482
초록은 달에서 보내온 선물이다. 내게는 달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그 친구와 한때는 손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쌓인 편지가 꽤 많았지만, 작년 이맘때부터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침묵하는 고무나무처럼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2019년부터 키워온 초록은 화분을 갈아주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도 더 이상 새 잎을 돋우지 않는다. 멀쩡하던 잎도 시름시름 앓다가 하나둘씩 떨어지고 기분 좋은 애교도 부리지 않는다. 초록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아주면 좋겠다.
물방울, 디지털 사진에 드로잉, 3774 x 5661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화장실이 온통 뿌옇게, 내 몸도 실루엣만 남는다. 몇 분 전 몸을 훑고 지나간 샤워 타월은 어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중력을 기다린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단 한 방울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물 분자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물방울이 단단하게 맺힌다. 타월의 끝에 맺힌다. 떨어질까? 아니면 이대로 말라버릴까? 만겁의 시간이 지나간다. 화장실은 어느새 시야를 찾았다. 화장실과 나는 서로를 바라본다. 물방울과 나도 서로를 바라본다. 눈 싸움에서 지는 쪽이 먼저 울어버리는 거다.
구, 디지털 사진에 드로잉, 5655 x 3498
우리 집에 사는 마사지 볼은 혼자 덩그러니 있는 일을 좋아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덩달아 덩그렇게 있는다. 그러다 발바닥이 심심해지면 발로 데굴데굴 굴려주고 종아리가 심심해지면 바닥에 앉아 떼굴떼굴 굴려준다. 여전히 덩그러니 있는 마사지 볼은 블랙홀 흉내를 낸다. 처음에는 내 시선을 몽땅 빼앗아가더니 그다음엔 빛도 먹어버리고 바닥에 가득한 머리카락까지 먹어버린다. 토해내는 쪽은 어디일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아무튼 이 둥근 물체에게는 신기한 힘이 있어서 내가 자꾸만 빨려 들어간다. 데굴데굴 떼굴떼굴. 아무래도 마사지 볼에 중독된 것 같다.
눈 감고 간다, 판넬에 유화, 162.2cm x 130.3cm
내 얼굴을 그린 작업은 재채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그림이 왜 하필이면 재채기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이유를 찾고 싶어 철학 공부를 했다. 서양 철학사에서는 고대부터 인간의 기분이나 감정은 철학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실존주의 철학은 기분을 가진 이러한 인간의 경험을 탐구한다.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 문장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이다. 나는 재채기를 하는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행위를 통해 나의 존재를 자각했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본질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여기서의 본질은 ‘눈꺼풀이 내려온 것이지 눈동자는 감고 있지 않다’라는 것이다. 내 눈꺼풀은 재채기와 함께 닫혔지만 내 눈은 닫힌 눈꺼풀을 보고 있다.
글쓰기와 노트, 가변설치
이 노트들은 젖어 있다. 축축하다 못해 툭 건드리면 물이 쏟아질 것 같다. 무언가에 너무나도 깊이 스며 온전히 짜낼 수 없는 단계이다. 이럴 때는 노트를 하나하나 빨래 건조대에 걸어 말려야 한다. 물을 적신 옷감은 안간힘을 써서 비틀어도 실 한 올 한 올에 물이 스며들어 여전히 축축하지 않은가. 만약 햇빛이 들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적막 속에서 긴 시간을 버텨내는 한이 있더라도 말려야 한다. 언젠가 바싹 마른 천 위를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며 메마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그는 부산 금정구 장전 1동에 위치한 원룸촌 어느 건물 202호에 산다. 각종 전염병과 인재가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그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은 부모님이 월세를 내어주시는 5평짜리 방 한 칸이 유일하다. 하루 중 집에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그는, 일상에서 은폐되어 느끼지 못했던 사물과 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것들의 존재를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쓰고 사진으로 찍었다. 실존철학자 하이데거의 언어로 설명하자면 용재자(Zuhandenes) 적 개념으로 접근했으며, 달리 말해 '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작업의 전부이다.